전두환 정부가 몰락한 이후, 당시 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렸던 김영삼과 김대중 두 사람은 결국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고 각각 대선에 출마하게 됩니다. 그 결과 표가 분산되면서 군부의 후계자였던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당시는 이른바 3김 시대로 불렸는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사람이 각각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정국을 주도하던 시기였습니다. 14대 대통령 선거 전 치러진 총선에서는 노태우 정부의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이 125석을 얻어 과반에 미달했고, 김대중이 새로 창당한 평화민주당은 70석으로 제1야당이 되었습니다.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은 59석,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35석을 얻었으며, 야권이 전체적으로 다수였지만 분열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삼은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14대 대선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다시 맞붙을 경우, 총선의 결과가 이어져 김대중이 당선될거라는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반면 노태우 정부는 과반 의석 확보를 통해 국정 주도력을 강화하려 했고, 김종필 역시 정치적 영향력 회복을 원했습니다.
이런 이해관계가 맞물려 결국 1990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세 세력이 3당 합당을 단행합니다. 이로써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과 함께 있던 노무현은 군부와 손잡았다는 이유로 합당에 강하게 반발하며 탈당했습니다. 이후 노무현은 김대중 측과 손을 잡고 정치를 이어가게 됩니다.
한편, 지역 기반 역시 이 시기의 정치를 크게 좌우했습니다.노태우는 경상북도 출신으로 TK 지역 지지가 강했고, 김영삼은 경상남도 출신으로 PK 지역 지지를 받았으며, 김종필은 충청도 출신으로 충청권의 대표 정치인이었습니다.김대중은 전라남도 출신으로 호남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치러진 14대 대선에서는 결국 김영삼이 김대중을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 갑툭튀로 정주영 정신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고 나중에는 국회 30석 정도를 가져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