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가 누구며 무엇을 할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앎이
자신감이라는 믿음의 형태로 나타나고 드러나며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타인이 나를 이용하고 속이며 해치고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위하고 섬기며 사랑하는 사람임을 아는 것이 믿음이며 신뢰고 그 사실을 확실히 아는 것이 확신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판단과 분별의 능력, 기준이 외면이 아니라 내면에 있음이며 그것이 곧 진실된 마음, 사랑인 희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기자신을 나누고 구분하신 의지, 섭리, 진리인 희생으로 창조되었기에 일원성, 절대성, 완전성, 무한성이 시공간이라는 형태로, 다양성, 유한성, 불완전성, 복잡성으로 다변화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타인과 세상을 향한 열린 관계성, 운동성, 방향성, 앎과 힘, 이치와 섭리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에 보여주고 들려주고 입혀주고 먹여주고 가르쳐주고 내어주는 모든 사랑이 희생임을 알수 있게 되는 거죠.
이와 같이 이해와 공감, 배려, 위로 칭찬 인내 겸손 정직 성실 등의 모든 선한가치가 뿌리인 희생에서 난 가지와 열매들, 씨앗이 과정을 통해 나무로 자라나 열매라는 이름의 결과와 결실로 실천되고 실현되는 현상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인과죠.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빛이라는 이름의 본질이란 나타나고 드러나는 섭리, 이치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신이 없는 자들은 자기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기준으로 세상을 변질시키고 왜곡시킵니다.
왜. 한정된 인지와 지각을 가지는 경계, 갇히고 닫힌세계, 지옥이 자기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무지와 무능, 무감각, 무책임, 무자비, 없음, 어둠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은 썩어져 없어지는 육체와 육신, 세상이라는 이름의 땅이 아니라 하늘, 영, 마음을 의미합니다.
역지사지는 희생이고, 같은 마음과 생각을, 의지와 뜻을, 사랑을 갖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자신을 가지라 말씀하셨죠. 선한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만 삯군, 사기꾼들의 마음속에는 성령이,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의지와 뜻이 없으니 너희는 이는 판단하고 분별하라 하셨습니다.
종교가 왜 종교인지 모르니 신을 믿는 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모르니까 모르는대로 살다 죽는것이 관성이 되는거죠.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의 마음과 생각으로 말하고 어른은 어른의 마음과 생각으로 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애벌레가 고치를 지나 나비가 되어 나비가 애벌레에게 너는 나다 라고 알려줘도 애벌레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코끼리 다리를 매만지며 그것이 기둥이라 말하던 장님들처럼 부분적 앎이란 실상은 무지와 가깝습니다.
진실이 왜 진실이 알지 못하는 자는 진실을 말할수 없고. 거짓이 왜 거짓인지 알지 못하는 자는 거짓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감사와 감동, 즐거움과 기쁨, 행복이 없는인간이 누구에게 무엇을 나눠주고 내어줄 수 있을까요?
굳이 죽음 이후를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분노하는 사람은 타인과 세상에 더 많이 분노하는 사람이 되어지고 감사하는 사람은 타인과 세상에 더 많이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당신이 인과를 이해하셨다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어떻게 말과 행동으로, 삶으로 증명되는지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죄인은 죄인을 낳고 성령은 성령을 낳습니다.
당신의 삶에, 영혼에 평안과 행복이, 지혜와 축복이 함께하시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단은 어째서 이단인지, 사이비는 어째서 사이비인지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진실이 아닌것을 거짓이라 말하고, 진짜가 아닌것을 가짜라 말합니다.
교회는 전부 죄인들만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란 곧 신이 계신곳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앙이란 하나님과 다른사람의 관계를 의미하는게 아니라 자기자신과의 관계를 말하죠.
그래서 자기마음속에 신이 존재하면 다른 무엇을 신경쓸 필요가 없게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