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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연없는 사람 없어요. 제 인생을 말해볼까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로 20살이 된 대학교1학년입니다. 저는 우선 6~7살 때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로 20살이 된 대학교1학년입니다. 저는 우선 6~7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어머니랑은 그 때 이후로 딱 한 번 보고 지금까지 연락도 만난적도 없습니다. 딱 한 번은 뒤에서 한 번 얘기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혼한 뒤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버지카드로 긁은 빛 몇 천만원을 탕감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을 나가셧고 친할머니께서 저희를 돌봐주셨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께선 저보다 2살 터울인 남동생이 더 어리고 불쌍하다며 저보단 동생을 더 챙겨주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랑 살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질투라는 감정을 그때부터 동생에게 느끼며 동생을 싫어했었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와 아버지, 동생과 함께 산지 얼마 안됐었던 어느날 갑자기 제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곤 원장선생님께서 이 분이 너희 어머니가 맞으시니?라며 확인을 해 맞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곤 저는 속으로 와 엄마아빠가 다시 우리집에서 사나보다 하고 정말이지 너무나 들뜬 마음으로 어린이집을 마치고 집으로 갔을 땐 어머니는 커녕 할머니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도 어머니는 오지 않으셨고요. 그리고 며칠 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저는 할머니에게 엄청 혼이 났습니다. 니 애미가 니 어린이집에 왔다메? 근데 왜 할미한테 말을 안 했어!? 라며 갑자기 혼을 내셨습니다. 알고 보니 어머니께서 어린이집에서 따로 모은 제 통장을 몰래 가져갈라고 저에게 얼굴확인만 하고 통장만 가지고 가셨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어머니를 믿었지만 그런 배신?감을 느끼고 힘들었었습니다. 할머니도 어린 저를 이해해주지 않고 자기 입장만 생각해 못되게 말씀하신것도 상처가 되어 할머니를 더욱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월세 4층짜리 빌라로 이사를 가며 제가 초2 8월 초였던 어느 날, 지역아동센터에서 에버랜드&캐리비안을 가는 날이라 기분이 좋았던 날 이었는데 그 날 아침6시를 좀 넘어서 갑자기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시더니 119를 부르셨고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나갔습니다. 그 후론 가까이 살던 큰엄마가 저희 집에 오시며 저와 동생을 봐주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아버지가 그렇게 쓰러져 실려나갔었을 때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도박을 자주 하며, 모았던 돈도 자주 잃었기 때문에 저희는 좀 살만하다 싶으면 가난하게 살았었습니다. 당연히 초등학생 때 용돈 1도 없었고요 2013년도니까 가끔 100원 200원씩만 받았었고요. 저도 이혼한 뒤로부턴 마트갈 때 뭐 사달라 뭐 원한다 이런 말 일절 하지 않았고요. 왜냐? 우리집이 가난한 걸 알았으니까. 집에 소파 침대는 뭐 당연히 없었고요, 보일러도 틀면 전기세 더 나오니까 겨울엔 거실/방1/부억은 안 틀고 함께 생활하는 방2만 틀고 아버지 할머니 동생 저 4명이 이렇게 같이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얼마나 심했나면 할머니가 아끼면서 모으신 제 통장에서도 돈을 몰래 빼가 도박에 다 돈을 잃었으니까요. 할머니가 학교지킴이, 지역아동센터에서 설거지하기(이 때 저는 사실 좀 창피했었습니다. 우리집 가난한거 아니까 이렇게 일자리 주는거 다 아는데 애들은 뭐라고 생각할까하면서요..)등으로 42년생이신데 일을 계속 하며, 돈을 벌고 저희에게 모으고 쓰셨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사시는 아버지처럼 살기가 너무 싫었고 지옥이었습니다. 난 하고 싶은 거 있어도 참고 버티는데 아버지는 도대체 왜 그러시지?를요 그래서 아버지가 입, 손, 다리 마비된 뇌졸증으로 쓰러지셨을 때 전 정말 밤마다 신한테 제발 우리 아빠 좀 죽게 해달라고 빌었었습니다. 제발 .. 아빠만 없으면 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 자신있다고... 하지만 신은 정말 없는 건지 아빠는 재활 치료를 받으며 건강이 조금 좋아지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집은 더욱 지옥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 후 저희를 때리기 시작하셨습니다. 흔히 나뭇가지나 파리채는 사랑의 매로 아시는데 저희는 정말 터무니없는 일로 맞았습니다. 아버지가 티비를 보다가 자기팀 축구가 지면 쌍욕을 하며 갑자기 저희에게 책가방을 가져오라하시면서 알림장을 읽더니 오늘 이거 해야되는데 왜 아빠한테 말을 안해!!!! (사실 아빠가 아빠같지 않고 아빠가 싫으니까 말 안하고 싶고 내가 알아서 하려했던거지만) 하면서 일방적으로 먼저 엄청 강하게 맨 손으로 머리 중앙을 때리거나 파리채나 두꺼운 나뭇가지로 종아리, 팔뚝 등을 맞았었습니다. 정말 뜬끔없이 맞았습니다. 초3부터 초6때 새벽에 라면을 끓여오라는데 물이 좀 너무 많으면 이게 뭐냐면서 때리고 맞고 갑자기 떡볶이를 나보고 만들라고 마트에서 재료를 사오라하고 사왔더니 나보고 칼질하라는데 잘못해서 손가락이 좀 베었는데 조심안하냐면서 칼 들고있는 그 상태에서 머리 엄청 세게 맨 손으로 맞고 언제는 갑자기 차타고 드라이브한다고 난 정말 아빠랑 같이 있기도 싫고 여행가기도 싫은데 조수석 태워서 핸드폰 내비게이션 내가 보게 해서 방향도 아빠한데 제대로 알려줘야하고 틀리면 또 그 자리에서 쌍욕(이 개병시ㄴ 새ㄲㅣ야 등등) 엄청 하고.. 정말 하기 싫은 거 억지로 엄청 했습니다.. 어릴 때... 아빠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셨을 때 병원에서 집으로 다시 온 그 날부터 저는 집이 정말 지옥이라고 생각했고 하루도 빠짐없이 밤마다 몰래 이불 속에서 울고 죽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진짜 정말 죽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그냥 밤에 다 잘 때 창문에서 뛰어내릴까 달리는 차에 나가서 뛸까? 아빠 할머니 집에 없을 때 동생 칼로 찌르고 나도 찔러서 주ㄱ을까 등등 온갖 상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그 집에서 정말 살기 싫었고 죽을 결심에 중1때 12월 20일에 저는 정말 죽으러 학교도 안가고 집에서 나와 촌이었던 저희 동네에서 갈만한 작은 도서관에 갔습니다. 그리고 8시반 9시를 넘기며 담임쌤과 아버지에게 많은 전화가 왔었습니다 저는 다 무시하고 도서관에 가 처음으로 한 것은 컴퓨터를 키고 죽는 방법, 자사ㄹ하는 방법, 고토ㅇ없이 죽는 방법 등등 죽음에 관한 것을 다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정폭력 사이트를 들어가 아버지를 신고하는 글을 썼습니다. 저는 그 전까지 당했던 일들 말고 바로 최근에 있었던 어제 그저께 일을 적어 신고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112와 담당 사이트 직원?분께서 전화가 오더군요 그리고 저는 경찰서에서 그동안의 일들을 말했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담담자 2분에게도 그동안의 일들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여태 당했던 일들보단 제가 사이트에 적었던 그 내용만을 원했습니다. 제가 그 분들에게 왜 최근 어제 그저께 일들만 노트북에 쓰시냐했더니 자기네들은 너가 그 사이트에 이 내용만 써서 신고했기 때문에 우린 이 내용만 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화가 났고 짜증났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 어머니께 느꼈던 그런 배신감을 또 느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내적으로 그분들에게 거부감을 느꼈고 제가 원하면 집에서 안 살 수 있고 다른 보호시설에서 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날부터 그룹홈에서 살게 되었고, 저는 처음 그룹홈이라는 곳을 오자마자 진짜 저희 집보다 잘 사는 집이어서 놀랐습니다. 우선 아파트였고, 방도 4개 화장실 2개 각 방에 2층침대와 각자의 책상, 그리고 거실엔 최신으로 보이는 티비와 소파,, 그리고 냉장고는 3대.... 심지어 간식 냉장고와 반찬 냉장고 김치냉장고였습니다. 저는 정말 처음 오자마자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난 진짜 다 포기하고 진짜 다 잃을 거 생각하고 다짐하며 온 것인데 너무 잘 사는 모습을 보고 진짜 처음엔 화부터 났습니다. 이렇게 지원해줄수 있으면, 우리집에 조금이라도 지원해주지 왜 우린 아무도 안 도와줬지?라는 생각을요... 그리고 그 그룹홈에서 조금씩 살다보니 저는 정말 다른 그룹홈은 몰라도 여긴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로 그룹홈 시설장님과 밑에 종사자들..... 그곳에 시설장님은 정말 독재자라는 단어가 잘 어울릴 정도로 그 시설장님이 하시는 말에 누가봐도 이건 좀 아닌 것 같고 막말에 쌍욕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하시는데 밑에 종사자 분들은 그 괘팍한 성격에 자기에게도 불똥 튀길 수 있으니 함부로 말을 못해 저희를 방관하였습니다.그리고 저가 이 시설에 오기 전까지도 아이들이 올 때마다 하나 둘 집을 나가기도 했고요. 그리고 40~50대이신 한 종사자 분은 자기가 공감을 잘 못해준다면서 애들이 좋을 일이 있으면 시큰둥하고 반대로 사고치거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쁜 일에만 발끈하고 제대로 짚고 넘어갈려하고.. 솔직히 공감도 못해주면서 왜 사회복지사를 할려고 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그리고 제가 중1,2 때 공부를 안하다가(그래도 평균 70은 됐었음) 중3때 영수학원을 다니며, 1,2학기 둘 다 기술가정과 도덕 빼고 모든 과목을 90점대를 받아왔었습니다. 근데 그 때 시설장님이랑 다른 종사자분들이 반응도 시큰둥하시고 너가 왜?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서 굉장히 기분이 나빴고 사실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지방에 사는 전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 학원비 다 우리 세금으로 다니는 돈이고 너 지금 열심히 안하는 거 보이는데 성적 나왔을 때 낮으면 두고봐라 라는 말을 진짜 매일 들었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런 말 하시다가 잘되면 모르는 척하고 시큰둥한 반응이면서 어쩔 때 잘 안 되면 내 말이 맞지? 이런 반응이어서 너무 기분 나쁘고 ㅈ같았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시설장님이랑 다른 종사자분들이 저에 대해 뭔갈 아는 거나 좋은 일이 생겨도 말을 안하게 되었고 관심을 안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던것같습니다. 그렇게 쭉 살다가 고1때 진로를 결정하다 미술에 관심도 있고 잘한다 생각해 미술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사실 미술은 돈도 많이 들고 미대졸업하고 뭐할지 잘 모르겠어서 안할려다가 시설장님이 미술을 하라고 중딩 때부터 권유하시기도 해서 미술하면 좀 달라지시겠지 하면서 미술학원도 다니고 공부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름방학 때 입시미술학원은 거의 매일 8시간동안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저는 당연히 다 찾아봐서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시설장님과 40~50대 종사자분은 전혀 모르셨습니다. 제 미래에 관심도 없고 입시미술에 대해 찾아보지도 않았으니 그러셨겠죠 그러더니 넌 이거 못한다 하면서 그만두라고 하셨고 학원비도 만만치않아 좀 압박같은 발언도 하셨고 제 머리속엔 온통 스트레스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1땐 학원을 적게 나갔고 고2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 저는 알바를 하며 돈을 벌어 학원비에 보탤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알바도 하지말고 학원도 끊으라더군요 진짜 제 미래가 달린건데 그분들은 너무 제멋대로였습니다.저는 그냥 무시하고 알바를 하며 돈을 벌고 공부(공부학원은 고딩때부터 안다님)도 하며 국어4등급(저희 학교에선 70후반도 4등급)사회선택 2과목 다 3,3등급을 맞았었습니다. 그리고 미술학원도 다니면서요. 그리고 여름방학 때 그 돈과 후원받은 돈으로 학원에 보탰고요. 그렇게 살다가 고3때는 시설장님이 바뀌면서 전보단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었고요 그리고 끝까지 미대입시를 하다가 대학을 붙어 지금 이렇게 대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런 지옥같은 10대 생활을 마치다가 20살이 되어 대학을 다니며 진짜 지금이 제일 마음이 편하고 300일 된 남자친구와 사귀며 더욱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자립은 11~12월 곧 할거고 아직 ㅈ같은 그룹홈에 살고 있지만, 전 이 얘기 살면서 친구 2명에게만 얘기하였습니다. 진짜 ...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여러분도 화이팅하세요....!

안녕하세요. 심리케어 365 대표 상담사 이준형입니다.

지금 당신의 글을 읽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6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이혼과 가난, 아버지의 도박과 폭력,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그룹홈에서의 아픔까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홀로 힘든 시간을 보내셨군요. '지옥 같은 10대 생활'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에 합격하여 지금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당신의 말에 저 또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며,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당신의 용기와 끈기는 그 어떤 누구에게도 깊은 감동을 줄 것입니다.

고통을 딛고 피어난 '당신의 삶'

당신은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당신의 삶은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힘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당신이 겪은 아픔들은 다음과 같은 흔적을 남겼을 겁니다.

  • '배신감'과 '불신':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 할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그리고 그룹홈 시설 종사자들의 방관은 당신의 마음에 깊은 배신감과 불신을 심어주었을 겁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은 당신이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 '자기 비난': '우리 집 가난한 거 아는데 애들은 뭐라고 생각할까'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탓했던 마음은, 당신이 얼마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는지 보여줍니다.

  • '도전'과 '성공': 아버지의 폭력과 그룹홈의 압박 속에서도 당신은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알바를 하며 학원비를 마련했고, 결국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당신이 얼마나 강하고 끈기 있는 사람인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당신이 겪은 모든 고통은 당신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몸과 마음이 지금 '치유'를 필요로 한다는 신호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

  1. 1.'나'의 삶을 온전히 인정하기: 당신은 '지옥 같은 10대 생활'을 보냈지만, 그 고통이 당신을 지금의 멋진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당신의 경험은 당신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2. 2.'치유'의 시간: 당신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어린 시절의 상처가 남아있을 겁니다. 지금은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셨죠. 그 행복을 충분히 느끼세요. 그리고 당신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학교 상담센터: 당신의 대학에 있는 상담센터를 이용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 심리 상담: 당신이 겪은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데 심리 상담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3.말하는 용기': 당신은 이미 '진짜 친구 2명'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많습니다. 당신의 삶은 당신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털어놓아 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용기 내어 당신의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만약 더 자세한 심리 상담이나 이야기를 나눌 곳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email protected]으로 이메일이나 쪽지 주세요. 당신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돕겠습니다.